이란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한 한국 해운 재벌의 과감한 유조선 투자 전략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4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전쟁 이전부터 대규모 유조선 확보에 나섰던 시노코(Sinokor) 그룹의 정가현 시노코 이사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급등한 운임 덕분에 전례 없는 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전쟁이 만든 유조선 시장 ‘슈퍼 사이클’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가현 이사가 이끄는 시노코르 그룹은 이란 전쟁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대규모 유조선을 공격적으로 확보해 왔다.
특히 최소 6척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빈 상태로 페르시아만에 배치해 화물을 기다리게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후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글로벌 원유 수송이 막히자, 유조선 운임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현재 시노코는 일부 선박을 부유식 저장 시설(floating storage)로 임대하며 하루 50만 달러(약 7억4800천만 원) 수준의 운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평균 운임의 약 1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런던 소재 선박 중개사 피언리(Fearnleys)의 할보르 엘레프센 이사는 “시노코는 유조선 선단의 상당 부분을 사실상 통제하면서 시장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운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평가했다.
▲ ‘베일에 싸인’ 한국 해운 후계자
정가현 이사는 한국 해운업계에서도 베일에 싸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시노코 1989년 설립된 해운회사로, 한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첫 컨테이너 정기 노선을 개설하며 성장했다.
시노코의 회장은 한국선주협회 회장을 지낸 정태순 회장이지만, 실제 사업 전략과 주요 계약은 대부분 아들인 정가현 이사가 직접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인사들에 따르면 그는 왓츠앱 그룹을 활용해 내부 지시와 외부 거래를 동시에 진행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며, 경쟁 선주들과도 직접 전화로 시장 상황을 논의한다.
또한 그는 유도(judo) 애호가이자 체력 관리에 매우 엄격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업계에서는 팔씨름에서 거의 패한 적이 없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 최근 몇 년 사이 커진 ‘공격적 베팅’
시노코는 과거에는 비교적 신중한 투자 스타일로 평가됐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전략이 훨씬 공격적으로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4년에도 대규모 유조선 예약으로 시장 운임을 급등시킨 사례가 있었지만, 이번 베팅은 그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몇 주 사이 시노코는 대량의 VLCC를 구매하거나 임차하며 시장을 놀라게 했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시노코가 약 150척의 초대형 유조선을 통제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는 당시 제재 대상이 아니고 이미 계약되지 않은 VLCC의 약 40%에 해당하는 규모로 평가된다.
그 결과 VLCC 1년 장기 임대료는 하루 10만 달러 이상으로 치솟으며 1988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 전쟁 전 이미 페르시아만에 배치된 선박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시노코가 일부 선박을 전쟁 직전 이미 페르시아만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시노코가 운항하는 '싱가포르 로얄티(Singapore Loyalty)'호는 1월 29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뒤 화물을 싣지 않은 채 대기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후 최소 5척의 선박이 추가로 두바이 인근 해역에 모여 대기했다.
업계에서는 이것이 전쟁 가능성을 예상한 전략적 배치인지, 단순히 화물을 찾기 위한 이동이었는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결과적으로 이 선박들은 페르시아만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용 가능한 빈 유조선이 됐다.
▲ 폭등한 운임…배 한 척 값도 6개월이면 회수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 통과가 사실상 중단되자 유조선 운임은 폭등했다.
중개업체들에 따르면 시노코는 VLCC를 이용해 중동에서 중국으로 원유를 운송하는 비용으로 배럴당 약 20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평균 운송 비용인 약 2.5달러의 8배 수준이다.
또한 시노코르가 지난 1월 평균 8,800만 달러에 매입한 유조선 중 일부는 현재 페르시아만에서 원유를 적재하고 있다.
만약 하루 50만 달러 운임이 유지된다면 선박 한 척 가격을 6개월도 안 돼 회수할 수 있는 수준이다.
▲ 그러나 장기 성공 여부는 불확실
다만 이번 전략이 장기적으로 성공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전쟁이 역대 최대 수준의 원유 공급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원유 수송량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시노코가 전 세계 유조선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최근 브라질에서 체결된 한 운송 계약은 하루 18만1천 달러 수준으로, 이는 지난해 평균 운임의 약 3배에 해당한다.
에너지 분석가 칼 래리(Carl Larry)는 “좋은 포지션은 전략과 운이 결합될 때 나온다”며 “시노코의 유조선 베팅은 매우 이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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