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네덜란드 ASML로부터 약 80억 달러(11조 9,500억 원) 규모의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 장비를 발주하며 인공지능(AI) 메모리 시장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이번 계약은 ASML 고객사 중 단일 기준 사상 최대 규모로, 2027년 12월까지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및 첨단 D램 생산에 투입될 예정이다. 장비는 청주 M15X 공장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배치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4일 공시를 통해 ASML과의 EUV 장비 구매 계약을 발표하며, 급증하는 AI 메모리 수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공식화했다. 이번 계약 규모는 약 11조 9,500억 원(미화 약 79억 7천만 달러)으로, 2024년 말 기준 SK하이닉스 총자산의 9.97%에 달하는 수치다. 이는 ASML 고객사가 공개한 단일 EUV 장비 주문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 AI 메모리 수요 폭증과 핵심 장비 확보 경쟁
이번 대규모 투자는 AI 산업의 성장으로 인해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고성능 D램에 대한 전례 없는 수요 증가에 기인한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주요 HBM 공급사로, 글로벌 HBM 시장에서 6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 리더십을 유지하고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인 EUV 장비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전략이다. ASML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EUV 노광 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그 장비 확보는 차세대 반도체 생산 능력과 직결된다.
번스타인(Bernstein)의 데이비드 다오(David Dao) 애널리스트는 이번 계약이 향후 2년간 약 30대의 EUV 장비를 포함할 것으로 추정했다. 업계에서는 EUV 장비 1대당 가격이 3,000억~5,000억 원 수준임을 고려할 때, 20대 이상의 장비가 도입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차세대 생산 공정 전환 가속화 및 생산 기지 확장
SK하이닉스는 도입되는 EUV 장비를 차세대 1c(6세대) D램 공정 전환을 가속화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1c 공정은 HBM은 물론 DDR5, LPDDR6 등 핵심 차세대 제품에 적용될 예정이다. 이는 삼성전자 등 경쟁사들과의 첨단 공정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새롭게 도입되는 EUV 장비는 SK하이닉스의 주요 생산 기지에 배치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HBM 생산에 중점을 둔 청주 M15X 공장과 첨단 D램 생산을 담당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투입된다. 특히 용인 클러스터의 첫 번째 클린룸 가동 시기는 당초 2027년 5월에서 2027년 2월로 3개월 앞당겨졌다. 이는 AI 메모리 수요에 대한 긴급한 대응 필요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SK하이닉스는 용인 클러스터 1단계에 총 31조 원(약 215억 달러)을 투자할 계획이며, 이 중 이번 EUV 장비 구매 비용이 포함된다.
또한 SK하이닉스는 지난 1월 청주에 약 130억 달러(19조 원) 규모의 첨단 HBM 패키징 공장(P&T7)을 건설할 계획을 발표하며, 2026년 4월 착공하여 2027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외에도 미국 내 AI 인프라 투자를 위해 100억 달러 규모의 'AICo.' 설립 및 38억 7천만 달러 규모의 첨단 패키징 공장 건설 계획, 그리고 미국 증시 상장을 통해 최대 100억 달러를 조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 반도체 업계 전반의 AI 경쟁 심화와 전망
SK하이닉스의 이번 대규모 투자는 전 세계적인 AI 반도체 경쟁이 심화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ASML은 2025년 말 기준 388억 유로(약 67조 원)의 수주 잔고를 기록하며, AI 수요로 인한 EUV 장비 수요 증가세를 반영했다. 삼성전자, 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도 EUV 장비 구매를 확대하며 AI 인프라 구축 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AI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2026년에는 데이터 센터가 전체 메모리 칩의 70%를 소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HBM을 포함한 D램 가격은 2026년 말까지 130% 급등할 것으로 예측되며, 메모리 부족 현상은 2030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SK하이닉스의 이번 대규모 투자는 이러한 시장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자, AI 시대 핵심 기술인 메모리 분야에서의 리더십을 공고히 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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