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국정역사교과서는 역사문제가 아닌 교과서 문제다. 여야는 본연의 임무에 집중한 후 역사 다툼을 벌이기를 바란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인조는 정묘호란으로 치욕의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집중한 사업은 아비의 추승이다. 반정으로 왕이 된만큼 아버지는 왕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추승도감을 설치해 아버지를 왕으로 세우기 위해 원종이라는 묘호를 바치고 묘의 위상을 능으로 높이는 작업이다. 많은 신하가 반대했지만, 반대하는 신하는 잘라가며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굳건하게 밀어붙여 마침내 이뤄냈다. 그리고, 일어난 병자호란으로 세번 절하고 아홉번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를 행하는 항복식을 행해야 했다. 국난의 위기속에서도 가장 시급한 일은 아버지 드높이기였는지 묻게된다. 인조 본인은 굴욕을 겪은 정도겠지만, 나라는 황폐화되고 국민은 수없이 죽어갔고 인간사냥을 당했으며 국격은 속국으로 떨어졌다. 비단 인조뿐 아니라 다른 여느 왕도 자신의 아비를 높이는 일에는 반대를 무릎쓰고 집권기간내에 반드시 이뤄냈다. 정조도 사도세자를 복권하는데 힘을 썼고 세종도 용비어천가로 조상을 찬양했다. 중요한 것은 할일은 해가면서 국가에 피해를 주지 않는 순수하게 왕실의 예법차원에서 이루어지느냐 아니면 국가의 힘을 낭비하는 권력투쟁으로 이어지느냐다.

민주주의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후 5대부터 9대까지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그 딸인 박근혜가 현직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아버지와 달리 국민의 투표로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으니 정통성이나 자격시비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현대통령은 국정교과서 문제를 꺼내들었다. 올바른 역사 교과서라는 명칭을 꺼내들었지만,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실어달라는 요구다. 박대통령은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고 여권은 입을 닫았다. 야권은 국정을 마비시켜가며 전력으로 막을 태세다. 역사학계는 하나둘 집필 거부를 선언한다. 낯뜨거운 찬박가 짓기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를 꺼려서일 것이다. 하지만 권력자가 역사적으로 보여온 행태를 보면 어떠한 반대를 무릎쓰고라고 해내고야 마는 것이 아버지 드높이기다.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는지는 중요하다. 하지만, 역사교과서가 바뀐다고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권력자가 역사를 그렇게 쓰겠다면 그렇게 쓰이곤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오늘이다. 과거의 역사는 평가의 대상일 뿐이지만, 오늘의 역사는 오늘 하는 그대로 새롭게 역사가 되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역사의 주제로 첨예하게 이야기되는 것은 한 일이 있어서다. 만주군 장교도 했고 독재도 했고 경제개발도 했다. 하지만, 오늘 여야는 무엇을 하는 지 궁금하다. 박정희를 드높이는 역사교과서를 썼다고 여권은 자랑할 것인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역사교과서 저지투쟁에 성공했다고 야권은 자랑할 것인가? 국가의 장래와 국민의 현실과 무슨 관계가 있는 일인지 자문해보기 바란다.

오늘날은 국가가 정하는대로 결정되는 시대가 아니다. 국정교과서 기술로 역사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질듯이 싸우는 것이나 여기에 쏠려있는 과도한 관심은 국가적 낭비다. 청와대와 여권은 광우병 파동의 실기를 기억하기를 바란다. 광우병 사태때 벌어진 극한대립은 국정운영을 끌고갈 힘을 소진시켜버렸다. 야권은 매번 여권이 던져주는 이슈에 끌려다니면서 반대하는 것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지 말기를 바란다. 여권을 비판하면서 국가발전을 위한 새로운 의제는 전혀 내놓지 못한체 분열자멸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새로운 정권창출을 꿈꾸고 있다면 허망한 잠꼬대다. 역사교과서 문제를 과대하게 의미를 부여하면 한도 끝도 없다. 하지만 역사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가 바뀌는 문제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여야가 균형을 맞춰 위원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다루면 될 사안이다.

여야 모두 역사는 전문가에게 맡겨두고 민생경제에 집중하자고 말한다. 여는 알아서 찬박가 쓸테니 관여말라는 것이고, 야는 현재대로 역사학계에서 쓰도록 내버려두자는 뜻이다. 둘이 똑같은 말을 다른 의미로 하고 있다. 27일은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있다. 벌써부터 역사교과서 이야기를 할지 말지가 관심사다. 다음날부터는 예산안 심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예산안 심사 도중 툭툭 국정교과서 이야기가 터져나올 것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예산안과 경제현안, 각종 시급한 민생법안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할일은 하고 역사다툼을 벌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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