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사내 앱' 설치가 찝찝한 나, 예민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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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선 그린 기술 독재의 시대는 황폐하게 묘사되지만, 그보다 더 교묘하고 뛰어난 기술을 갖춘 현대 사회는 풍요롭고 찬란하다. '빅브라더' 나 '판옵틱스'처럼 독재자가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기계나 높은 탑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의 사생활이 권력을 가진 누군가로부터 침해받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 매일 손에 쥐고 다니는 스마트폰 마저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내 앱'을 제작하는 게 요즘 대기업의 트렌드인가 보다. 이유는 다양하다. 인터넷 전화 기능을 도입해 실용성이 떨어지는 구내 유선전화를 없애려는 기업도 있고, 방산 업체처럼 보안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기업은 보안용 어플을 개발하기도 한다. 단순히 사내 메신저용으로 사용하려고 전용 앱을 만드는 곳도 있다. 그러나 사내 앱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기업과 달리 직원들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업무용 앱 설치 지시를 거부하고 경영진에 항의성 이메일을 보냈던 직원 이 모 씨는 오히려 회사 측으로부터 징계를 당하자, 이에 반발해 법적 대응에 나서 결국 징계 무효소송을 받았다. KT 는 스마트폰 무선 네트워크 품질 향상을 이유로 앱 설치를 지시했으나, 이씨는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있다며 황창규 KT회장에게 직접 항의성 이메일을 보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5월 1개월 정직 징계를 받고 부서를 재배치받았다. 조직 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 징계 사유였다.

앱 설치를 강요하는 기업은 KT뿐만이 아니다. 피죤은 회사 앱 설치를 거부하는 노동자에게 영업활동비를 주지 않는 등 불이익을 주고 있으며, 포스코는 스마트폰용 보안 소프트웨어 설치를 요구하며 이를 겨부할 경우 평가점주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노골적으로 밝혔다. LG와 삼성 등 다른 대기업 집단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앱 설치 거부하는 직원, 과민한 걸까?

스마트폰용 앱은 그동안 개인정보 접근∙수집 권한을 과도하게 요구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앱 대부분인 사용자의 통화기록이나 위치정보, 문자, 사진 등 개인정보를 마음만 먹으면 접근할 수 있어 무분별하게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지난 8월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내려받은 상위 앱 30개를 분석한 결과, 개인정보 접근 권한을 요구하는 건수가 평균 19.4개나 되었다. 페이스북 메신저, 카카오톡, 후후 등 메신저나 통화와 관련된 어플은 접근 요구 건수가 30개가 넘는 경우도 많았다. 기능이 유사한 사내 메신저 앱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게 직원들의 생각이다.  

포스코, 삼성, LG등에서 사용하는 보안 프로그램은 유심(USIM)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하는데, 유심엔 휴대전화 가입자 정보와 네트워크 접속 정보, 텍스트 메시지, 이메일, 폰북 기록 등 개인부가 서비스 정보가 저장된다. 사실상 위치 추적을 비롯해 주요 통화 기록과 메신저 등 개인 정보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유심을 열람하게 되면 사생활 기록이 그대로 노출된다. 원격에서 스마트폰 기능을 정지시키거나 위치를 추적하는 게 가능할 정도다.

심지어 피죤은 영업 직원이 언제 거래처에 방문했는지 회사 측이 확인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해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직원 근무태도를 관리하기 위한 것이란 명목이었으나, 이는 명백한 개인정보 침해였다.

어디까지나 개인 물품인 스마트폰을 업무용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LG생활건강이 자사 직원 스마트폰에 업무용 인터넷 통화 어플을 설치하도록 지시하자, 직원들은 "근무 시간이 아니거나 회사에 있지 않은 시간에 업무 전화를 개인 스마트폰으로 받아야 하는 건 엄연한 업무시간 연장이다."라며 반발하고 있다. 기업 소속별로 차이는 있지만 개인 정보 보호와 사생활 침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근로자들의 공통적 시각이다.

사내 앱 사용으로 업무 효율성 높이려는 기업

반면 기업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포스코는 자사 제철소가 국가보안 목표에 해당하는 시설인 만큼, 제철소 내 사진 촬영 방지 등 정보 보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LG생활건강도 "사내 앱을 개발해 유선 전화기를 대체하면 비품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회사 WIFI를 이용하는 인터넷 전화라 추가 요금 부담도 없다."라며 사내 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중 보급이 완료된 스마트폰을 활용한다면 추가 시설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다른 앱도 사용자의 개인 정보를 침해한다. 앱 설치할 때 직원 동의도 받는다."라며 사내 앱 설치이 당위성을 주장하는 기업도 있다. 하지만 개인 재량으로 설치하는 일반 앱과, 회사의 지시나 강요로 설치해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까지 받는 사내 앱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근로자는 자신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기업의 지시를 거부하기 힘들며, 사내 앱 설치 시 진행되는 동의 절차도 사실상 강제로 봐야 한다.

포스코 보안 앱 관련 소송을 담당한 양윤숙 변호사는 '일부 대기업의 MDM(보안 앱) 관련 법적인 문제점'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MDM을 이용한 일부 대기업의 보안 체제 강화는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근거 없이 직원들과 관련된 제 3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통신비밀보호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 산업기술유출방지법에도 위반되는 위법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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