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4.19는 혁명, 5.18은 민주화 운동, 비슷하지만 다른 시민 항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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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에 참여한 시위대의 모습
5.18 민주항쟁 기념탑
5.18 민주항쟁 기념탑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5.18 민주화운동 추모 행사 전야제에서 쫒겨나고 물세례를 받는 등 수모를 겪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어느때보다 깊은 때라 광주 시민들의 눈에 두 주요 정당 수장의 참석이 꺼림칙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만큼 5.18은 광주 시민들에게 욕보여선 안될 숭고한 기념일이다. 

4.19와 5.18은 모두 독재정권에 항거한 사례다. 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4.19혁명은 독재정권을 몰아낸 성공한 혁명이었던 데 반해, 5.18 민주화 운동은 시민들이 끝까지 피를 흘렸음에도 정치권력에 의해 조작되고 은폐되었던 실패한 저항이었다. 다른 결말을 맞은 이유가 무엇인지 5.18 기념일을 맞아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4.19 혁명에 참여한 시위대의 모습
4.19 혁명에 참여한 시위대의 모습

? 원 인

<4.19 혁명>

4.19혁명의 도화선은 3.15 의거였다. 집권 여당이었던 자유당은 1960년 3월 15일 대한민국 정부통령 선거 중 마산에서 40%를 사전투표하고, 공개투표를 강요하는 등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이에 민주당을 주축으로 마산 시민과 학생 만여 명이 시위에 나섰고, 경찰의 발포로 7명이 사망하고 870명이 부상당했다. 실종됐던 고등학생 김주열이 4월 11일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었으나 이승만 정부는 공산당 사주라며 발뺌했고, 부통령 당선자 이기붕이 "총은 쏘라고 준 것 아닙니까?"라며 경찰의 강경 대응을 옹호하자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5.18 민주화 운동>

박정희의 죽음으로 유신 체제는 끝났어도 유신헌법은 남아있었다. 후임 대통령 최규하는 긴급조치를 해제하고 개헌 논의를 허용했으나, 전두환의 12?12 쿠데타로 무산된다. 전두환은 집권 후 언론을 회유해 국가 안보를 위한 군의 정치 참여를 정당화하고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묵살했다. 하지만 미국에 의해 전두환 정권이 주장한 "북괴남침설"이 날조된 것임이 드러났고, 1980년 5월 초부터 민주헌법 수립을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 10만여 명이 서울역에 모여 연일 시위를 벌였다.

5월 15일엔 시위대 청년 한 명이 버스를 탈취해 전투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했고, 이로 인해 전경 1명이 사망, 4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에 신군부는 5.17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김대중, 김종필 등 정치인 26명은 합동수사본부로 연행됐고, 김영삼은 무장 헌병에 의해 가택연금됐다. 학생?교수?재야인사 2,600명이 체포되었고, 국민은 강제 정치활동 금지?휴교령 등에 불만을 품었다. 5월 18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학교 정문에서 시휘를 하자 공수부대가 이들을 폭력으로 진압했고, 이것이 5.18민주화 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던 전라남도 도청
광주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던 전라남도 도청

? 경 과 

<4.19 혁명>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대통령 관저와 부통령이던 이기붕 자택으로 몰려가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으나 이승만은 계엄령을 선포했다. 경무대 경찰서장 곽영주는 곡사포와 군인을 동원해 학생들을 진압했고, 사상자가 속출하자 분노한 시위대원들은 경찰로부터 무기를 탈취해 무장한 뒤 종로 일대에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4월 19부턴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주축으로 서울지역 모든 대학교의 학생들이 시위에 참가했고, 계엄령에도 불구하고 시위대 규모는 점점 커졌다.

4월 23일 장면이 부통력직을 사임한 뒤 민주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선언했고, 4월 25일엔 대학교수들까지 시위에 나서기 시작했다. 법무부 장관 권승렬, 외무부 장관 허정은 물론, 주한 미국대사까지 이승만을 찾아가 하야할 것을 설득했다. 이승만은 처음엔 시위대가 반동세력일 뿐이라며 반발했으나, 곧 3.15선거에 부정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하야를 결정했다.

<5.18 민주화 운동>

공수부대가 투입된 건 신군부가 이미 반대 시위가 있을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계엄사령관 임희성은 "광주지역에 불순 인물과 간첩이 들어와 악성 유언비어와 약탈 행위를 계획했다."며 시위대를 불순분자로 규정했고, 공수부대는 잔혹하게 시민을 진압했다. 5월 18일 신군부는 제7공수여단을 광주 시내에 투입했고, 이들은 시위 학생뿐 아니라 일반 행인에게도 곤봉과 대검으로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분노한 광주 시민들이 시위에 가담하자 대학생 중심이던 시위는 20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항거가 되었다. 시위대 진압이 힘들다고 판단한 공수여단은 실탄을 분배했고, 5월 21일엔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시작됐다.

광주는 군인들에 의해 완전히 포위?봉쇄당했고, 전국 각지에선 신군부의 언론 통제로 유언비어가 떠돌아다녔다. 시위 세력은 시민군이 되어 광주 내 치안을 유지했지만 자진 투항을 주장하는 세력과 결사항쟁을 감행하자는 세력 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적시에 대응을 하지 못했고, 결국 계엄군의 화포에 5월 27일 전원 살상당했다. 5.18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사망자는 163명, 행방불명자는 166명, 부상 뒤 숨진 사람이 101명, 부상자가 3,139명, 기타 피해자가 1,589명에 이른다. 2001년엔 공수부대원이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 암매장했다는 양심선언이 발표됐고, 민간인 사망자 중 14세 이하 어린이도 8명에 달했다. 연행된 사람들에 대한 비인격적 고문행위도 밝혀져 논란을 샀다.

 

하야 후 하와이로 떠난 이승만 (좌) 재임기간 뇌물을 받아 상당한 재산을 모은 전두환의 아들 전재용(좌)
하야 후 하와이로 떠난 이승만 (좌) / 재임기간 뇌물을 받아 상당한 재산을 모은 전두환의 아들 전재용(좌)

? 이 후…   

<4.19혁명>

하야를 결정한 이승만은 계엄군과 경찰의 발표로 목숨을 잃은 시민을 애도하고 병원을 찾아 유가족과 학생들을 위문했다. 이어 자유당 총재직과 대통령직에서 하야할 것을 발표했다. 마지막 연설에서 그는 부정이 있었던 3.15 선거를 다시 할 것, 이기붕을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도록 할 것, 내각책임제를 개헌할 것을 국민과 약속했다. 이후 이승만은 비밀리에 하와이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조용히 살다가 91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5.18 민주화 운동>

전두환 정권은 5.18 민주화 운동을 소요사태로 조작했으며, 신군부는 노태우까지 정권을 이어가며 약 8년간 집권했다. 이들은 아직도 전임 대통령으로서 예우를 받고 있다. 민주환 운동 관련자에 대한 명예 회복과 배상은 1988년 5공 청문회 이후에나 이루어졌다. 5.18 민주화 운동은 군사독재의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보인 사례로 세계에 알려져 군사독재체제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켰으며, 민주주의는 한 지역이 아닌 전 국가적 저항과 연대가 있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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