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나영길 감독 베를린영화제 단편 황금곰상 수상… "무기력한 그리스도 그렸다"

나영길

"(황금곰상 수상은) 예상 못 했죠. 사실 은곰상 발표할 때 다른 사람이 불리는 것을 보고 '이제 그만 돌아가자' 했어요.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줄 몰랐던 거죠. 하하"

최근 폐막한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호산나'로 단편경쟁부문 대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한 나영길(32) 감독은 16일 연합뉴스와 한 전화 통화에서 이같이 수상 소감을 밝혔다. 전날 폐막 파티의 여파로 아침 비행기를 놓쳤다는 나 감독은 프랑스 파리를 경유해 귀국할 예정이라고 했다.

" 폐막 파티 전 커다란 식당 홀에 모여 식사를 하는데 빔 벤더스, 대런 아로노프스키, 봉준호 감독 등 세계적인 거장이 함께 모여서 식사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정말 뵙고 싶었던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도 만났고요."

나 감독에게 단편 황금곰상을 안긴 '호산나'는 아프거나 다친 마을 사람을 치유하고 죽은 자를 되살리는 소년의 얘기를 다룬 25분 길이의 영화다. '호산나'는 구약성경 시편에 나오는 여호와에게 구원을 청하는 히브리어.

주인공 소년 '섭'(지혜찬)이 차에 깔려 죽은 개구리를 손에 품고 되살려 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를 통해 감독은 삶과 죽음, 구원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소년은 마을 사람들을 되살려내지만, 다시 살아난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망가진다.

나 감독은 "무기력한 그리스도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년이 계속 마을 사람들을 살리는 이유요? 일종의 책임감 아닐까요? 성경에서 여호와가 자기가 만든 인간을 대하는 태도는 애증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대홍수로 사람들을 다 쓸어버리고 난 이후에도 완전히 없애지 못하고 다시 살려놓고 피폐해져 가는 세계를 또 증오하잖아요. 신도 어쩔 수 없는 존재인 거죠 우리가."

 나 감독은 "무기력하고 치료감에 사로잡힌, 그러면서도 사실은 모든 것의 원인이 그리스도 그 자신이 아니겠는가를 얘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가 목회자인 나 감독은 "집안 분위기도 있고 해서 예전부터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왔다"고 했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상원에 들어가기 전 1년 정도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제게 있어 신은 애증의 대상이고 여전히 어떤 투쟁의 대상입니다. 갈등이 있었죠. 실제로 아직도 제가 많은 답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나 감독은 "내가 생각하는 신은 한국 기독교에서 주장하거나 정립해놓은 그런 그들의 하나님이라기보다 하나의 세계를 운행하는 신의 개념에 더 가깝다"고 했다.

영화의 표현 수위가 꽤 높은 탓에 "잔인하다"는 유럽 관객의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제 폐막식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만난 한 심사위원은 그에게 "처음에는 영화를 보고 기분 나쁘고 싫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집에 돌아가 누웠는데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괴롭히더라. 영화적으로 완벽하고 잘 만든 다른 영화들이 있었지만 현재 내게 남아있던 건 이 영화였다. 영화의 잔상들, 영화가 던지려고 했던 정서가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날 것 자체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방식 때문에" 김기덕 감독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 감독은 "어릴 때부터 김기덕 감독을 좋아했다"며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방식 자체라기보다는 내가 어릴 때 향유했던 감독이라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5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얘기를 그린 단편 영화를 촬영하고, 올해 안에 장편 시나리오를 완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편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단편 황금곰상을 받은 것은 2011년 박찬욱·박찬경 감독의 '파란만장' 이후 두 번째다.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작품인 '호산나'는 앞서 작년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부문 심사위원 특별상, 제13회 미장센단편영화제 절대악몽부문 심사위원 특별상,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 열혈스태프상 등을 수상했다. 올해 초 세계 3대 단편영화제인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경쟁부문에도 진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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