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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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가 정치 선진국이라고?... 엘리트 주의 벗어난지 고작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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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로잔대학의 공과대 건물
스위스 로잔대학의 공과대 건물
스위스 로잔대학의 공과대 건물

'엘리트'라는 단어는 현대 한국 사회에선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본래 대다수 구성원에 비해 특별히 더 많은 재력이나 정치 권력을 가진 소수 사회 지도층을 가리키던 단어였으나, 정치학계에서 '엘리트주의'란 학설을 통해 권력 형성과 정책적 결정이 다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특정 소수 집단에 좌우된다는 점을 조명했기 때문이다.

학문으로서 엘리트 주의는 가치판단을 배재한 상태에서 엘리트가 존재함을 인정하자는 입장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를 접한 평범한 사회 구성원은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특히 '게이트 키핑(Gate Keeping)'등 엘리트 집단이 자신에게 불리한 정치적 이슈를 압살 한다는 개념은 민주주의적 가치에 위배되는 것이라 크게 반감을 갖는 경우도 있다.

'가장 민주적인 국가'.. 20년 전만 해도 엘리트 주의 극심해

'정치 선진국'이라 불리는 스위스 역시 한때 정치-경제-행정-학계 지도자가 집단을 형성하는 극심한 엘리트 주의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엘리트 집단 간 관계가 희박해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스위스 로잔 대학에서 사회정치학을 담당하는 '펠릭스 부루만'교수는 '스위스 사회의 변화'라는 논문에서 스위스 엘리트 집단의 변천을 조사한 결과 위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부루만 교수는 지난 100년 동안 스위스의 '엘리트'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그들의 직업과 교류 관계를 찾아갔다. 그 결과, 스위스 엘리트들은 20세기 전반 동안 유사한 사회적∙교육적 배경을 형성해 권력자 간 밀접한 네트워크를 형성했으나, 21세기에 들어선 개인별로 독립하는 추세를 보여 엘리트 집단 간 연결이 희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부루만 교수가 다룬 '스위스 엘리트 집단 데이터베이스'는 1910년부터 2010년 사이 스위스 엘리트 집단에 속하는 2만 명의 이력과 경력이 총망라돼 있다. 관련된 분야는 정치와 경제, 행정, 학계 등이며, 1900년 전반 스위스 엘리트 대부분은 부유하고 학력이 높은 스위스인 남성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개인이 한 엘리트 집단에 속하게 되면, 곧 그 사람의 이름이 다른 집단에도 등재되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57년엔 국회의원의 19.5%가 스위스 최대 기업 110개 중 적어도 한 곳의 이사로 있었다.

사회학에선 이처럼 국회의원이 정치 활동과 당시에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을 '부업 정치 시스템'이라 불렀다. 어떻게 정치 외 다른 일까지 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현대와 달리 그 시기엔 그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동 논문의 공동 저자인 '앙드레 마하' 교순는 "입법 과정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어 현대 국회의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정치활동에 쏟아야 한다. 하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국회의원의 업무량이 늘어난 것이 엘리트 집단 네트워크가 희석된 중요 원인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과거엔 주요 은행과 기업 간 관계도 경영자가 겹치는 등 유착이 심했다. 하지만 금융 시장이 본격 도입되며 은행이 기업 대출 이자보단 금융 시장 투자 수익금에 더 관심을 갖게 됐고, 기업도 은행에 의지하기보단 시장 자금을 좇게 되었다. 결국 은행과 기업의 관계도 90년대 중반부터 희미해졌다.

네트워크 희박해진 이유는 여론의 반응과 세계화

이처럼 권력, 정치, 자본 등의 변화가 엘리트 네트워크 약화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이 외에 또 다른 중요한 영향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것은 '사회의 반응.'이었다. 부루만 교수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어떤 사람이 여러 분야에 발을 걸치고 있으면 언론과 여론이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엘리트 사회가 급변한 직접적 계기는 세계화였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스위스 다국적 기업 대부분은 스위스 국적 경영자 손에 있었지만, 2010년 기준 외국인이 경영을 맡고 있는 기업 비율은 35%까지 증가했다. 최근에도 스위스 주요 은행인 크레디트 스위스가 아프리카 출신 '브래디 두간'을 CEO로 선출했다.

엘리트 사회에서 변화가 거의 없었던 부분은 단 한 가지, 남녀 비율이다. 역시 로잔 대학의 교수인 '스테파니 지나루스키'는 "스위스는 1970년대가 되어서야 여성을 정치 고위직에 임명할 수 있는 법을 제정했다. 그런데 금융권은 남녀평등을 이루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라고 지적했다. 2010년 기준 여성 엘리트 비중은 정치권에서 27.6%, 금융권에선 10%에 불과했다.

현재 스위스 국민의 엘리트 집단에 대한 인식은 다양하다. "엘리트 중심 사회는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신속할 수 있었다."라고 긍정적으로 추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엘리트 집단의 결정 방식은 투명성이 없었다. 민주주의 가치와 상반되는 관행이었다."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부루만 교수는 "엘리트 집단은 현재 과도기에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알 수 없다."라며 "대기업 경영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엘리트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외국 교수 비중이 늘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아직 국제화에 소극적인 보수 정당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두 경향은 실로 대조적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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